내가 좋아하는 소설가라 한다면 바로 "김훈"을 꼽는다.
그는 가야금을 연주하고 소리를 만든 우륵의 이야기도 그려냈다.
내가 김훈의 소설을 처음 본것이 22살 군대에 있을 적이었는데 벌써 오래전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때 읽은 책이 "칼의 노래"라는 책이었다.
난 한글을 그토록 정갈하게 쓴 소설을 본적이 없었다.
문장하나 버릴 것이 없이 한줄 한줄 읽을 때마다 내게 다른 감성으로 와 닿았다.
이순신 장군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게서 잊은 줄 알았던 감각들을 깨우는 듯 했다.
어찌나 글들이 간결하고 버릴 것이 없었는지 한문장 한문장을 씹고 또 씹어야했다.특히나 이순신이 왕께 올렸던 장서의 마지막 문장이라고 적힌
"신의 몸이 살아있는 한 적들이 우릴 업신 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라는 문장에서 나오는 잔잔한 감동에 왈칵 눈물이 나올뻔 했다.
밖에서는 왜군의 133척의 군선을 불과 12척의 배를 일자진(一字陣)으로 맞섰던 의연한 장군을 그려냈기 때문일까.

적군의 왕앞에서 춤을 추고 연주하며 노래했던 그의 죽어가던 스승을 부여잡고 울부짖는 장면이 그토록 슬프게 와닿을 수 없을 정도로 그의 글은 읽는 이에게 감정을 확실히 전달했다.
그렇게 언제나 글을 아름답게 쓸 줄로만 알고 생각했는데 그가 문학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할때 아주 적나라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나는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문학보다 사람이 살아야한다고 말하는 그 모습에서 정작 우리가 한낯 공상에 빠져 문학과 예술보다 더 중요한것이 먹고 사는 것.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하는 것. 그 아래에서 우리는 문학과 예술을 논해야한다고 이야기 했다.
이성적으로. 그리고 그것을 감성으로. 표현해야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말하고 싶은 것을 고르고 그것을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글로 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그가 펼치는 글들은 한글이 표현 할 수 있는 깊은 속내를 깊이 탐구하고 그것을 갈고 또 갈아서 한마디로 만들어 쓰는 것 같았다.
가끔 내가 쓰는 말들이 그러했다면. 내가 쓰는 글이 그러했다면. 하고 바랄때가 많았지만 잘 되지 않는 까닭은.. "내 생애의 훈련이 글을 써먹게 되어있으니까" 글을 쓰는 그와 같지 않아 그렇게 되지 않는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가 쓴 "칼의 노래"에서 처럼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이순신 장군의 한마디 한마디가 그토록 아름답지만 결국 살기위한. 그리고 사람으로써 가장 원초적인 것들을 구했던 그래서 문학이 결국 문학으로써의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그가 이야기 하고 싶어했던것을 써 내려간것을 난 좋아하고. 또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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